이상묵 교수·이승복 박사 등 4명 "사소한 일이나마 돕자" 한자리에…
한국의 환경 너무 열악해 "우리가 무엇 할 수 있을까" 연구자와 의사로서 고민

의지의 한국인 2명이 휠체어에 앉은 채 재회(再會)의 기쁨을 나눴다. 2006년 지질조사 연구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가 자동차 전복사고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된 뒤 2년 만에 강단으로 복귀한 서울대 이상묵(48·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촉망받는 고교 체조 선수였던 1983년, 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된 후 재활의학 전문의로 재기에 성공한 이승복(45·미 존스홉킨스대학) 박사.

한국에 온 이 박사가 13일 오후 이 교수의 서울대 연구실을 찾았다. 작년 8월 한국에서 처음 인사한 뒤 두 번째 만남이다.

"'국가대표 장애인'으로 국내파 3명과 해외파 3명이 있지요. 오는 16일 저녁 이들 중 4명이 모입니다. 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모으는 자리지요. 해외파 3명을 대표해 이 박사를 초청했습니다."

이 교수가 말한 국내파 3명은 본인과 열린세상국민문화운동본부 이일세 대표,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김종배 박사다. 해외파 3인방은 이승복 박사와 시각장애인으로 미 백악관 정책차관보를 역임한 강영우 박사, 장애를 이겨내고 미 뉴욕시 형사법원 판사가 된 정범진 판사를 말한다.

이승복 박사는 "작년 8월에 와서 이 교수님을 처음 뵌 이후 장애인 문제에 대해 자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며 "앞으로 장애인을 위한 지원과 투자가 늘어나도록 사소한 일이나마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문제의식은 '성공한 장애인'으로 꼽히는 6명이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치료받았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장애인이 직업을 갖고 스스로 삶을 지켜나갈 수 있는 토양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이상묵 교수는 "지금은 각자 유명한 장애인이지만 한자리에 모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복 박사는 "며칠 전 커피전문점을 갔는데 화장실 가는 길에 턱이 있어 종업원 도움을 받아야 했다"며 "지하철역마다 엘리베이터가 생기는 등 여건이 좋아지긴 했지만 사회적으로 세심한 배려가 좀 더 필요하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올 12월엔 이상묵 교수가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면서 이 박사의 연구실을 들를 계획이다. 이 교수는 "20년 전 (보수적인) 공화당 집권기에 미국장애인법(ADA)을 통과시킨 당시 법무부 장관과 민주당 의원을 만나 법안 통과 과정에 대해 듣기로 했다"며 "저는 연구자로서, 이 박사님은 의사로서 어떻게 의기투합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