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는 생각 대신 죽을 각오로 일에 몰두했죠"

◆ 위기 극복의 성공스토리 / ③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서울대 교수 ◆

"멘틀보다 깊은 죽음 문턱까지 가보니 새 길이 보이더군요."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46)는 2006년 7월 제자와 함께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사막 지질조사에 나서던 중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한 뒤 전신마비 장애를 겪고 있다.

정확히는 어깨를 경계로 아래쪽 신경이 머리와 분리돼 있다. 머리 아래 신경이 마비돼 있으니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앉아 있을 때나 어디 갈 때나 항상 전동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한다.

연구를 하거나 논문을 쓸 때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음성인식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마우스 커서 이동과 `클릭`은 입을 사용한다. 그런데도 그는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불행하지는 않다"며 넉넉한 웃음을 보인다.

오히려 이 교수는 "음성인식기가 7개 국어를 인식하는데 유독 한글이 없다는 점만 빼고는 연구와 정보교환에 큰 어려움이 없다"며 "정상인으로 40년 넘게 살았으니 다른 세계에서 살아보는 걸 불평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평소 이 교수는 오전 7시에 일어나 가족과 주변 도움으로 장장 2시간 동안 출근준비를 한다. 차량은 문턱을 낮추고 지붕을 높인 특수개조된 스타렉스를 이용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오체 불만족`을 그는 `행운`이라 말했다.

이 교수는 "혼수상태에선 `이렇게 중도하차시킬 인생을 왜 여기까지 오게 했느냐`며 하늘을 원망했다"며 "그런데 깨어나 다시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온 것도 모두 주변에서 도와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고가 난 뒤 한 달 만에 `전신마비`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그는 무덤덤했다고 했다. 오히려 그에게 더 큰 고통의 순간은 제자가 그때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넉 달 후였다.

그래서 이 교수는 사고 이후 인생관과 재활 당시 경험 등을 토대로 한 자서전 `0.1그램의 희망`을 출간한 후 책 판매 수입금 전액을 숨진 제자 이름을 딴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그는 사고 이후 6개월 만에 강단에 다시 서게 됐다. 그에게 난관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어봤다.

"어제(25일)가 크리스마스였나요? 생각해보니 저는 99년부터 사고 직전까지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한 번도 뭍에서 보내지 못했더라고요. 태평양 남극 등 늘 바다에서였죠. 지금은 그럴 수 없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그의 머릿속엔 늘 `일`생각뿐이었다는 얘기다. 일에 대한 집착은 `죽고 싶다`는 생각 대신 `죽을 각오로 재활을 해 일터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불어넣었다.

이 교수는 최근 구치소에 수감 중인 죄수들에게서 편지 여러 통을 받았다.

그가 자서전에서 "내 삶이 그래도 감옥에 사는 사람보다 낫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가 받은 편지는 "교수님이 죽음보다 무섭다는 감옥에서 살고 있다. 이 안에서 교수님 책을 읽고 희망을 찾게 됐다. 나가면 열심히 살겠다"는 팬레터였다.

어떤 편지는 사업에 실패해 죽고 싶어 약을 갖고 다니던 중 이 교수 편지를 읽고 난 후 재기를 결심했다는 사연도 있었다.

이 교수는 최근 2년 반 만에 외국여행을 다녀왔다. 이달 중순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학회에서 제자와 함께 쓴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서다.

그는 "사고 발생 후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휠체어가 고장날까봐 내가 창고에 타고 휠체어를 비즈니스석에 태우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다"며 "대한항공에서 배려를 많이 해줘 무사히 여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 교수는 지난 16일 샌프란시스코 시의회로부터 해양지구 물리학 발전과 장애인 복지 향상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특별공로상(BSA)을 수상했으며 미국 공영방송 PBS가 운영하는 과학전문 채널인 `노바`는 이 교수 개인에 대한 특집 다큐멘터리 제작에 착수했다.

[이지용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