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에게는 컴퓨터가 보조기구에 불과하지만 장애인에겐 신체 일부와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은 우수한 분들이니까 장애인 보조기구 연구와 개발에 더 힘써 주세요."

30일 저녁 8시 서울대 관악캠퍼스 문화관 강당. 장애인 부부의 사랑을 그린 감성 멜로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조영찬(41)씨는 300여명의 서울대생들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청각 중복 장애인인 조씨의 유일한 지각 수단은 촉각이다. 시각은 어릴 때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완전히 잃었고, 청각의 경우 그나마 서서히 기능을 상실해 듣지는 못해도 말로 표현할 수는 있다.

이날 서울대 QoLT산업기술지원센터는 '달팽이의 별' 상영에 이어 '달팽이의 희망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QoLT센터는 6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상묵(50)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센터장을 맡고 있는 곳.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을 잃은 가수 겸 개그맨 이동우(42)씨가 사회를 맡고, 조씨 부부와 '달팽이의 별'을 만든 이승준(41) 감독까지 4명이 나란히 앉아 '장애와 접근성'이라는 주제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눴다.

조씨의 부인 김순호(49)씨는 키가 120㎝에 불과한 척추 장애인. 그러나 조씨에겐 세계와 소통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김씨는 손가락으로 조씨의 손등에 점자를 쳐서 대화한다. 이른바 '점화(點話)' 방식이다. 대화가 길어지면 전자 점자를 통해 인터넷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고안된 휴대용 기기인 점자 정보 단말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가격 장벽이 너무 높은 것이 문제다. 

"남편의 눈과 귀 역할을 대신하는 점자 정보 단말기는 빌려 쓰고 있는 거예요. 너무 비싸기 때문이죠. 가격문제부터 해결하지 않는다면 장애인 보조기기를 개발해도 널리 보급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감독은 조씨 같은 시청각 중복 장애인에 대한 실태 파악부터 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시청각 장애를 모두 가진 분들이 얼마나 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대로 된 실태조사조차 없는데 정책이 수립되기를 바라는 게 언감생심이죠."

3월 대중에 선보인 '달팽이의 별'은 장면을 해설하는 음성 가이드와 자막이 포함돼 있어 시ㆍ청각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 버전이 오리지널 버전과 함께 동시에 개봉된 첫 국내 영화다. 배리어프리 버전이 상영된 이날 눈을 감고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도 많았다. 영화를 본 박대민(36ㆍ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박사과정)씨는 "비용이 많이 드는 의료기기 개발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배리어프리 영화처럼 예술ㆍ과학이 결합된 융합과학 기술을 활용하고 장애인들의 수요를 잘 반영한다면 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은 물론 만족도까지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묵 교수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소수자 중 소수자'인 중복 장애인을 위한 보조 공학 기술 개발에 사회적 관심이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