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터널 가봤지? 이공계 학문은 남산 터널을 달리는 것과 같은 거야.
숨을 참고 터널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빛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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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2년 5월에 처음 이상묵 교수를 만났다.
<차인태의 명불허전>에 이 교수가 출연하는데 (방송 작가의 말에 의하면) 함께 출연할
다양한 경험을 했고 꿈을 향해서 노력하는 학생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지만 사실 나는 이 표현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이때의 나는 꿈을 향해 달리기보다는 꿈이 무엇인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공계 학문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내 능력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시점이었다.
나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사람이었지 아인슈타인처럼 천재적인 능력이 있는 학생이 아니었다.
이런 고민 탓에 전공 선택이 괴롭게 느껴졌다.
그런 나에게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은 학생으로서 방송에 나오라니....... 정말 아이러니한 경우였다.
하지만 한 달 후, 나는 전공신청서에 컴퓨터공학과를 적어서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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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21살이고 아직도 이공계 학문을 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경험이 부족하지만,
대한민국의 이공계 학문의 길을 걷는 학생 중 한 명이고
많은 학생과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고통을 느끼는 학생으로서 이 시리즈를 시작하고 싶다.
그리고 방황하는 나에게 이공계 학문의 매력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준 사람이
독자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이과, 어디가? > 시리즈의 첫 기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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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는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고 알려졌기도 하다.
이 교수는 2006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차량 전복 사고를 겪은 후 목 위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고 후에도 강단에 서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도 과학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미에서 계산과학을 시작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인터뷰는 이상묵 교수의 자택에서 진행하였다.
휠체어를 타신 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본 여러 가지 기구들을 이 교수 집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
러나 방에 들어가는 순간 학교 연구실에서 보았던 여러 가지 기계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형 스크린 텔레비전과 컴퓨터, 태블릿 PC, 블루투스는 기본이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스타워즈나 스타트랙 같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 교수는 박용준 열기와 나를 웃으면서 받아주었다.
그리고 마이크에 “Open Microsoft Word” 또는 “Click close” 등의 명령을 말하면서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해서 아들에게 카톡을 보내고 문서 작성도 했다.
음성인식기는 띄어쓰기도 자동으로 하였다.
박용준 열기와 나는 IT 기술을 이용해서 업무를 너무나도 쉽게 처리하는 이 교수를 보면서
감탄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현대 기술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이틀 전에 인터뷰 요청을 하기 위해 이 교수의 연구실에 갔을 때 그가 한 말 한마디였다.
“일반인에게 IT는 삶을 조금 편하게 해주는 도구이지만 장애인에게는 희망이다.”
이상묵 교수는 최근에 자신을 찾아온 청각 장애인 학생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 학생은 청각 장애가 있지만 문자 메시지 덕분에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어려움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카카오톡이나 빠른 속도의 문자가 개발되기 전에는 수화로 소통해야 했다면
지금은 수화를 모르는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IT가 세상보다도 소수 사람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장애인도 과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정으로
이상묵 교수가 추진하는 계산과학은 영어로 Computational Science이다.
말 그대로 계산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문이다.
계산은 이공계 공부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할 줄 아는 것인데
굳이 독립된 전공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는지를 질문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 이 연합전공을 만들 때도 그런 질문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교수의 의견은 달랐다.
“과학의 본질은 관측과 실험이다.” 이 교수가 내린 과학의 정의이다.
“과학이 요구하는 능력은 뛰어난 머리가 아니다. 물론, 이것도 무시할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를 모으고 그 자료에서 패턴을 볼 수 있는 관찰력이다.
사실, 과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열정, 관측과 실험이 필요한 학문이다.”
이 관점에서 과학을 볼 때, 계산과학은 이공계 학문의 기초이기 때문에 더 중요할 수 있다.
기초 없는 응용은 불가능하다.
또한, 계산과학은 이공계의 발전을 돕는 학문이기도 하다.
“계산과학은 관측과 실험을 못 하는 것들을 연구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방식의 과학 기법이다.”
예를 들자면 이상묵 교수가 연구하는 판 구조론, 물리학의 고온 플라스마 실험 또는 원자 폭탄 등은
실험이 불가능하거나 비현실적이거나 너무 위험하다.
그러나 계산과학은 기존의 자료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현실로 구현하지 못하는 실험들의 결과를 예측 할 수 있게 해준다.
“판이 움직이는 속도는 손톱 자라는 속도와 같아. 대학원생한테 이런 주제를 주면 절대 졸업 못 할 거야.”
그러나 계산과학의 진정한 매력은 불가능한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이상묵 교수가 말하는 이 학문의 매력은 무한한 시행착오다.
“인간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운다. 에디슨을 보아라. 약 만 번째에 전구를 밝혔다.
그가 말하기를 그전의 9,999번은 실패가 아니라 9,999가지의 작동되지 않는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근데 실험실에서 그 정도로 시행착오를 겪으면 쫓겨난다. 또는 실험을 잘 못 하면 실험실이 폭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컴퓨터의 최악의 경우는 프로그램이 다운되는 경우이다.”
농담이 섞인 진담이다.
모든 학생들이 계산과학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가?
또한, 이 교수는 계산과학의 주 도구인 컴퓨터의 매력은 커뮤니티라고 말한다.
핸드폰을 처음 샀을 때 설명서를 읽어 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친구에게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하고 물어보면서 사용 방법을 터득한다.
컴퓨터를 배우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컴퓨터 공부는 고시 공부하듯이 3,000장짜리 책을 읽으면서 암기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배우는 학문이다.
논문을 베끼면 표절이라고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은 공유하고 그것에 더하면서 개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커뮤니티 덕분에 이공계 분야가 빨리 발전할 수 있다.
이상묵 교수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이공계 학문의 매력에 금방 빠지게 된다.
그러나 대학생으로서 현실적으로 느끼는 이공계 학문은 어렵고 괴로울 때가 더 많다.
이 교수도 이 심정을 이해한다.
이 교수는 우연히 과학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가 대학 입학할 때에 비교하면 현재의 대학생들처럼 전공 진입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사치이다.
“우리 때는 나라가 못 살았기 때문에 진로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연히 이공계를 선택했는데 요즘 애들은 너무 많이 본다.
음……미스코리아가 쫙 서 있는데 그중에 여자친구 고르는 거랑 같은 거로 생각해도 되겠지?
우리 때는 동네 갑순이밖에 없었는데……”
그리고 이 교수는 우연히 선택한 해양학을 공부하면서
학부 4년 동안 후회한 적이 많다고 말했다.
본인은 남들이 하지 않는 개성 있는 전공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우리나라는 해양학을 지원할 여지가 안 되는 국가였다.
"해양학은 나라가 바다에 돈을 버릴 정도가 되어야 발전할 수 있는 분야다.
그래서 학부 때는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그의 고생은 여기서 시작일 뿐이었다.
MIT로 대학원을 가면서는 그는 진정한 학문의 세계를 접했다.
그때 과학은 정말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가장 힘든 것은 나는 해양학을 사랑하는데 해양학은 나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을 때였다.”
이공계 학문을 선택하는 모든 학생의 두려움인 것 같다: 과학을 향한 나의 짝사랑.
이 교수가 해양학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을 35세가 넘어서라고 말한다.
서열상 미국에서 해양학을 할 때 대학원생은 Ben Hur 수준에 가까웠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보다 해양학을 잘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연구 때문에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그 배의 운명이 그의 말 한마디에 의해 결정되는 정도였다고 한다.
“7년 동안 연구소 생활을 하면서 배에 타면 아무 데나 갈 수 있었다.
마치, 바다를 정복하러 다니는 해적 Jack Sparrow처럼.”
이 정도의 권위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서는 연구에 관한 책임도 모두 부여되었지만
그만큼 자기 일이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 교수는 이런 열정을 통해서 과학의 보람을 느꼈다.
이 교수의 말에 의하면 인류의 고도성장은 인류의 성향이나 인격의 변화가 아니라 과학의 발전 때문이다.
역사 경제학자들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생활상을 분석하면서 짐작한 평균 국민 소득이 $100이다.
그리고 산업혁명 바로 직전에는 약 $150이다.
2000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인류는 1.5배 발전한 것이다.
이처럼 과학의 장점은 엄청난 발전의 원동력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보이는 분야라는 것이다.
반면에 단점은 너무나 빠른 발전 속도 때문에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묵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의 말을 해준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과는 괴롭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달리는 게 이과다.
또한, 너무나도 빨리 발전하고 변하는 세상에서 계속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더욱더 눈앞을 캄캄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안개 속에서 달리고 있다.
우리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아무리 어두운 순간에도 혼자 이과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글: 이소명
사진: 박용준
출처 : 영삼성 / 원문기사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