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는 2006년 7월 학생들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막 지역을 연구하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LA 재활전문병원의 작업치료사는 그에게 맞는 전동 휠체어와 장비·소프트웨어 등을 소개해 줬다. 덕분에 이 교수는 지난해 2학기부터 강단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 교수는 강의를 컴퓨터에 의존한다. 이마에 붙이는 조그만 스티커 센서와 PC 부착용 카메라가 한 세트를 이루는 헤드 마우스는 화면의 커서를 움직이는 데 사용된다. 입김을 불어 조작하는 조이스틱형 마우스로 클릭이나 드래그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음성인식 프로그램은 그의 말을 화면에 문자로 바꿔준다.

이 교수가 쓰는 ‘Extreme’이란 헤드 마우스는 온라인에서 약 1000달러에 판매되는
미국 기업 제품이다. 고개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들은 뇌파를 인식하는 헤드셋이나 센서가 부착된 안구마우스렌즈로 커서를 움직이기도 한다. 농구선수 출신의 루게릭병 환자 박승일씨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안구마우스렌즈를 통해 컴퓨터에 글을 쓴다.

의사소통 프로그램의 경우 이 교수는 영어를 써야 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MS사의 윈도비스타에 장착된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를 한글로 변환시켜주는 제품이 마땅치 않아서다. 국내 IT업체가 개발한 ‘바이보이스 2.0’(약 17만원)이 있긴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노트북에선 불안정하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스티븐 호킹 박사는 말을 할 수 없는 대신 손가락 일부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컴퓨터에 글자를 쓰면 음성으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재무분석표도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 재무분석사(CFA)로 뉴욕 금융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순규(41)씨. 한국에서 태어나 10세 때 시력을 잃은 그는 시각장애인 중창단의 피아노 반주자로 미국에 갔다가 그곳 맹학교 관계자의 눈에 띄어 유학 초청을 받았다. 신씨는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뒤 MIT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밟다 월가로 진출, 2002년엔 장애가 없는 이들도 따기 힘든 CFA 자격증을 거머쥐었다. 그는 세계적 투자은행인 JP모건을 거쳐 현재는 브라운 브러더스 해리먼이라는 프라이빗 뱅크에서 일하고 있다.

신씨의 업무는 기업의 시장성을 분석하고 투자 가치에 따라 증권을 사고파는 일이다. 기업의 금융 상태를 엑셀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 분석하고, 그것을 프레젠테이션 자료로 만드는 일 역시 그가 직접 한다. 컴퓨터 화면의 텍스트를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 프로그램과 텍스트를 점자로 바꿔주는 점자변환기가 눈을 대신한다.

그는 “애널리스트는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 필수인데 시각장애인도 컴퓨터만 능숙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며 “복잡한 도표나 그래프 등 정확한 분석이 요구될 때는 점자변환기를 좀 더 활용한다”고 말했다.

신씨가 컴퓨터를 처음 접한 것은 뉴저지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학교에서 컴퓨터 스크린을 말로 읽어주는 ‘Echo’라는 제품을 사 준 덕분에 컴퓨터 사용법을 빨리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증세나 정도가 제각각인 다른 종류의 장애와 달리 시각장애는 특성이 같기 때문에 보조기구도 국산 제품이 많이 개발돼 있다. 스크린 리더로는 40만원 안팎의 ‘센스리더’, 점자변환기는 300만원 안팎의 ‘싱크 브레일’ 등이 있다.

첨단기술과 함께 휠체어도 진화

2005년 12월 17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댄스그룹 클론의 콘서트 ‘더 미라클(The Miracle)’. 공연장을 가득 메운 2500여 명의 관객은 무대의 강한 빛줄기 사이로 콘서트 제목과도 같은 ‘기적’을 목격했다.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클론의 멤버 강원래(39)씨가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지 5년 만에 무대에서 직접 일어서 보인 것이다. 스위치로 의자 부분을 조종, 선 자세를 만들어주는 기립형 휠체어 덕분이었다.

강씨가 이용한 제품은 경기도 재활공학서비스 연구지원센터가 무상으로 대여해 준 1800여만원짜리 스웨덴산 전동 휠체어. 강씨는 “언젠가는 다시 걷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퍼포먼스였다”고 말했다. 평소 그는 좀 더 가볍고 가격도 저렴한 스위스 Levo사의 수동 휠체어(약 500만원)를 사용한다. 기립형 휠체어를 쓰는 건 무릎 부위의 힘을 기르고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서다. 강씨는 “DVD 등을 볼 때 일부러 서서 본다”고 말했다.

강씨에게 휠체어는 자신의 손발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휠체어에 앉아 춤도 추고 방송 활동도 하는 그는 수동형을 선호한다. 부피가 작고 가벼워 승용차에 혼자 싣고 다니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씨는 가속기와 브레이크를 연결한 50만여원짜리 핸드 컨트롤러를 사용해 운전도 직접 한다.

강씨보다 심한 중증장애인들에겐 전동 휠체어 사용이 불가피하다. 장애의 정도와 유형에 맞는 조종간을 사용하면 고개나 손발의 작은 힘으로도 휠체어를 움직일 수 있다. 이상묵 교수의 경우 머리 뒷받침에 센서가 붙어 있어 고개를 기울이는 방향에 따라 휠체어가 움직인다. 욕창 방지를 위해 자세를 바꾸고 싶을 땐 앞쪽 조종간을 뺨으로 누르면 휠체어가 천천히 뒤로 젖혀져 누울 수 있다.